예수께서 다시 생각하신 구세주.
소개:
일시적인 승리, 덧없는 관계, 물질적 추구에서 구세주를 찾으려는 외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스도 탄생 당시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전한 천사의 영원한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인류가 성취와 목적을 추구할 때 종종 일시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 구원을 기대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사야서 55장 2절에 나오는 이사야의 경고처럼, 우리 사회는 일시적인 승리에 희망을 걸고, 일시적인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초기의 행복감이 사라지고 나면 공허함을 남기는 승리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업, 스포츠 또는 개인적 성취에서 성공의 매력은 매혹적일 수 있지만, 갈망하는 영혼에 지속적인 평화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시편 20편 7절의 “어떤 사람은 병거를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한다”는 시편 기자의 지혜를 상기시켜 줍니다.
마찬가지로, 관계를 통한 구원의 추구는 고귀한 노력이지만, 행복의 궁극적인 기초로 삼는다면 실망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소중하지만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변화와 연약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탄생 당시 천사의 선포는 우리의 시선을 인간 관계의 일시적인 본질을 넘어 흔들리지 않는 위안과 불변의 원천으로 향하게 합니다.
스포츠에 대한 열광 속에서도 우리는 구세주에 대한 희망을 품습니다. 스포츠 시즌이 끝나고 승자보다 패자가 훨씬 더 많을 때면 “내년을 기다려요!”라는 외침이 도시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그런 다음 드래프트가 열리거나 새로운 연습생이 선발되면 팬들은 팀에 영광을 가져다줄 새로운 선수에게 꿈과 희망을 걸게 됩니다. 연습생, 새로운 고객, 새로운 장비, 내일 우편으로 도착할 소식 등 모든 것이 그 어떤 생명체나 그 어떤 것이 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희망으로 투자됩니다.
부, 소유물, 사회적 명성 등 물질적 추구는 종종 결핍으로부터의 해방과 안락함의 획득이라는 일종의 구원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물질적 부의 일시적인 속성은 성경 마태복음 6장 19~21절에 나오는 주제로, 영원한 의미를 지닌 보물을 찾으라고 촉구합니다.
우리의 선배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승리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성공, 인정, 승리를 추구하면서 그들도 성취의 덧없음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 그들은 전도서 2장 11절의 “그러나 내가 내 손으로 행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살펴보니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쫓는 것이었도다”라는 지혜를 되새기며 우리에게 교훈을 남겼을 것입니다. 이들의 경험은 우리 시대의 일시적인 승리를 넘어 더 깊고 지속적인 의미의 원천을 찾도록 촉구하는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이 가슴 아픈 대조 속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희망의 등불로 서 있으며, 참되고 지속적인 구원은 이 세상의 일시적인 승리, 관계, 물질적 추구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찾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 심오한 진리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우리가 탄생을 축하하는 구세주, 즉 현세를 뛰어넘어 영원에 이르는 사랑을 베푸시는 구세주를 신뢰합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인류의 공통된 경험 속에서 베들레헴에 대한 천사의 선포는 하나의 통일된 메시지로 작용합니다. 세대의 경계를 뛰어넘는 구세주, 세대의 물질적 추구를 뛰어넘는 구세주,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오신 분들과 앞으로 오실 모든 분들을 위해 탄생하신 구세주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우리가 함께 추구하는 구원의 실타래를 엮어보고,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지혜를 인정하며, 영원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서 영원한 성취를 찾도록 모두를 초대해 봅시다.
이 이야기는 성경의 복음서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날 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 평원은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음향 및 조명 쇼가 펼쳐지는 극장이 되었습니다. 온 하늘이 열렸습니다.
누가복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줍니다: 누가복음 2:8-14
“그 근처 들판에는 목자들이 밤에 양떼를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주님의 영광이 그들 주위를 비추자 그들은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다윗의 마을에 구세주가 나셨는데, 그는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표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 “갑자기 하늘의 큰 무리가 천사와 함께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그의 은총이 임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천사 방문객은 하나님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영광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영광은 천사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천사들로 대표되는 그분의 신성한 임재를 의미했습니다. 베들레헴 들판을 가득 채운 빛의 폭발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는 구세주의 도래를 알렸습니다.
우리는 갓 태어난 구세주가 “주 그리스도”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놀란 목자들에게 이 칭호에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구세주는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유대인은 언젠가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메시아-구세주는 또한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왕이자 주권자가 되실 것입니다.
천사는 이 구세주-메시아-주님이 “너희에게” 태어났다고 선언합니다. 이 신성한 선포는 심판의 신탁이 아니라 선물의 선언입니다. 새로 태어나신 왕이 우리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변혁의 여정으로 초대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구세주, 메시아 주님이 “너희를 위하여” 탄생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장 30절)고 선언하며 목숨을 버리신 십자가에서 새로운 삶, 희망의 회복, 목적의 회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오늘 우리가 함께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와 그분이 살다 가신 삶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덧없는 추구를 넘어 구세주의 변함없는 사랑 안에서 위안을 찾도록 도전합니다. 전통과 영원의 교차점에 서 있는 지금, 이 이야기에 담긴 행동의 요청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오늘은 구원의 날”(고린도후서 6:2)임을 기억하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사도행전 4:12)는 말씀을 기억하며,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지속적인 기쁨과 평화, 성취의 진정한 원천을 받아들여 봅시다.
이번 성탄절에는 이 메시지의 변화시키는 힘에 우리의 마음을 열고,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희망을 주시는 구세주의 품에 안긴 삶에 대한 집단적 각성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랍니다.